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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seobyoon (2023-04-27 10:2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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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커가 붙어있는 그것


스티커가 붙여있는 플라스틱 그것

몇년 전 새로운 컴퓨터를 사게 되었다. 예쁘게 포장된 박스 속, 비싼 은색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이번에는 오래오래 깨끗히 써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바로 구매한건 투명 컴퓨터 케이스. 씌워보니 마음이 꽤 든든해졌다. 그런데 깨끗한 표면만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때문인지 무언가를 올려 내 스타일로 만들고 싶었다.

스케치북 속3 틈틈히 만들어 놓은 나의 반려견 스티커들과 모아놓은 어디선가 받은 스티커들을 꺼내 한두개씩 붙혀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더 쌓여가는 스티커들을 차곡차곡 붙였다. 몇달 몇년이 지나보니 내 케이스는 어떤 그림이 되어버렸다. 오래전에 붙였던 종이 스티커들은 때가 타서 회색으로 바래버렸고 새로운 스티커들은 왠지 모르게 반짝거렸다. 울퉁불퉁해진 덧붙인 자리들은 심심할때 만지작거리는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컴퓨터가 지지직 거리며 꺼져버렸다. 한순간에 꺼져버린 검은 화면 속에서는 어쩔줄 몰라하는 내 얼굴만 비추었다. 다시 켜지긴 했지만 파일들이 많이 사라지고 컴퓨터는 예전같지 않고 자꾸 꺼져버렸다. 할 수 없이 수명이 다다른 컴퓨터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의 플라스틱 커버를 벗기며 오랜만에 스티커들을 자세히 보았다. 스티커를 보며 그 때의 상황도 추억해내고, 짧지만 잠깐동안이나마 여유를 즐겼다. 커버를 버릴까 말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결국에는 방 한켠에 놓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사를 가며 큰 박스 어딘가에 있던 이 케이스를 한국에 올쯤에 다시 찾았다. 컴퓨터가 없으니 케이스라 하기는 그렇고 판판한 아크릴판도 아니라 원래부터 의도한 콜라쥬도 아닌 이상한 스티커가 덕지덕지있는 플라스틱을 그린캔버스에 가져가고 싶었다. 세월이 지나 녹아버린 스티커의 본드, 손때가 묻은 종이 표면들, 까져버린 디자인, 스크레치 난 변색된 플라스틱. 처음의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물건이 되어버린 이 것.

"원래 그래"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듣는, 또 말하는 문구이다. 그런데 초반의 의도와 달리 변화하고 특별해지면 "원래 그렇다" 라는 말은 무의미해 지지 않을까. 무언가를 버리기 전에 원래 용도가 달라졌다해도 한번더 생각해보면 그것만의 추억과 의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스티커가 붙여있는 플라스틱 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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